[제19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최우수상 「경계선 지능 아들과 함께 성장한 우리」 > 임시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임시게시판

[제19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최우수상 「경계선 지능 아들과 함께 성장한 우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5-04-10 23:35

본문

최우수상 - 산문학 김난영


경계선 지능 아들과 함께 성장한 우리


1.

신명이가 태어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어느 새벽이었다. 갑자기 아이 심장이 뛰지

않았다. 입술이 새파래졌다. 아이를 들쳐 업고 근처 병원을 찾았다. 때마침 의료 대란이

한창이던 때라 병원 응급실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럼에도 워낙 위중하다보니 소아과

과장님이 뛰어나와 아이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갑자기 전기 충격기를 꺼내들었다. 순간

응급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마도 근처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아이가 죽을 수도

있음을 직감한 듯 했다. 다행히 20여 분이 지나자 신명이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 신명이는 그렇게 우리 가족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신명이는 느린 아이였다.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치료와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때가 되면 아이가 따라올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6개월에 한 번씩은 꼭 폐렴으로 입원하곤 했다. 거기다 태어날 때 혈관

기형이 있어 혹부리 영감처럼 혹이 있었다. 그 혹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사라졌다. 한없이 약하고 느린 아이, 그럼에도 내게는 한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당시 나는 학원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정말 바빴다. 결국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보기에도 신명이는 많이 늦어 보인 듯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딸이 상심할까봐 말없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5살이 되어도

신명이가 말을 하지 못하자 그제야 덜컥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동생도 둘이나

있어서 너무 잘 어울려 놀았다. 나는 그저 말도 글도 조금 느린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우리 아이가 장애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2.

그즈음 나는 글랜도만 박사가 쓴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박사님은 모든 아기의 지능은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분이셨다. 책에는 현대 뇌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와 임상 실험의 기록이 가득했다. 책을 정독한 후 내린 나의 결론은 이랬다.

아이를 믿어주고 사랑하면서 책에 나온 대로 따라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조그마한 용기가

생겼다. 내가 직접 아이를 치료해보자고 다짐했다. 당시 신명이가 막 6살이 되던 해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신명이와 함께 하루 2시간은 꼭 함께 책을 읽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꼭 껴안으며 책을 읽었다. 나는 글랜도만 박사님이 말대로 우리 아이의 지능은

무한하다고 믿었다. 책을 정독한 후 나는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신명아,

엄마는 너를 믿는다. 엄마는 너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 너는 반드시 세상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이 말을 하면서 나는 혼자 울었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내가

한 그 말이 스스로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다졌다. 그러자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엄마,

고마워요’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 혼자 떠드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가 눈으로

내게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통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조금 미쳐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전혀 효율적이지 않아 보이는 독서를 무려 1년 간

계속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바쁜 날은 따로 녹음을 해서 친정 엄마에게 들려주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거짓말처럼 아이의 말문이 터졌다. 신명이가

비로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어순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우리 집에서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신명이의 통역관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어순으로 말할 수 있도록

하나씩 하나씩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신명이는 정확한 어순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절대

아이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3.

그럼에도 현실은 또 현실이었다. 신명이가 7살이 되던 해였다.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를

갔다. 선생님들은 그날의 행사를 위해 다양한 시각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그 교재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게 화근이 됐다. 선생님들이 날밤을 새가며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너무 미안한 마음에 밤새 끙끙 앓았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이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런 일들을 무수히 만날 텐데, 그때마다

허리 숙여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나는 교회를 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예배당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호소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무지개 빛깔 구름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한 아이가 바구니 같은 걸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신명이가 앉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목소리도 내게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 신명이를 이

땅에 보낸다, 너희 부부가 잘 키울 것 같아서다. 라는 말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아이를 정말 소중하게 바라보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4.

신명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움반을 갔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평범한 아이들 속에서 신명이가 눈에

띄게 느리다는 사실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병원을 찾아 필요한 거의 모든 종합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지금 당장 장애 진단을 받기에는 애가 너무 어리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물론 나 역시 아이한테 일찌감치 장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신명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5.

사실 우리 부부는 신명이를 일반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입학을 1년쯤

미뤄가며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대안학교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때마침 교회가 대안학교를

시작하신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신명이의 대안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사건은 신명이가 같은 학교를 다니던 형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신명이는 다시 일반 학교로 돌아와서 특수교육지원청에서 나온 전문가로부터 다시

정밀한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지능검사 결과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결정하는 바로 그

경계선에 우리 아들이 놓여 있었다. 장애 등급에 필요한 점수보다 딱 1점이 높았다. 사실

우리 아들은 겉으로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답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다. 다만 학교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학습의 이해가 조금 느린 아이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명이를 도움반에

보냈다. 일반반과 도움반을 왔다갔다 하는 새로운 학교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명이는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신명이가 자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1년 동안의 꿈같은 학교생활이 계속되었다.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런 신명이를 지켜보며 행복했다. 문제는 아이가 중2가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우리 아이도

달라졌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더 빨리 자랐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함께 잘 놀던 아이들이 더는 놀아주지 않았다. 장애가 심하지 않으니

장애아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 달

정도 후에 알 수 있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아이는 그 충격 때문에 지능이 더욱 낮아졌다.

결국 의사 선생님 말에 동의를 하고 결국 장애 진단을 받았다. 2016년의 일이었다. 아이

앞으로 복지 카드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신명이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은

장애가 아닌데 왜 장애라고 하느냐는 거였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박사님이 쓴 ‘경계선 장애 아이들’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서울에 있는

분이셨는데 자신이 경계선 아이들을 데리고 전문 센터나 학교를 운영하시면서 그 임상

사례를 책으로 낸 거였다. 그런데 그 책을 보니 우리 아들의 사례와 너무나 비슷했다.

나는 그제서야 우리 아이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경계선 지능 장애에 대해 우리 부부는 정말로 무지했다. 그래서 부랴 부랴

관련된 책과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 책 중 하나가 ‘뇌의 스위치를

켜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인지신경 뇌과학자인 캐롤라인리프 박사가 쓴 책이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두뇌 해독 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을 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게

되고 리프 박사의 두 번째 책 완전한 나에 나온 350여개 질문지를 번역해 학원 아이들에게

적용해보기도 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아이들의 정체성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 어떤 다른 아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사람이 저마다 각자의 생각이 형성되는 사이클이 다르다고도 말했다.

사실 그 당시의 신명이는 마치 로봇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질수록 자꾸만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 했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심리적으로 주눅이 들어도 밥도 안 먹고 잠도 자지 않았다. 중2때부터 시작된 방황은 그

후로 무려 5년 이상 아이의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특수학교로 전학을 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더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면서 자존감이 높아지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스피치 훈련은 물론이고 바리스타 과정에 추천하기도 했다. 그리고 때마침 집

바로 옆에 장애인복지관이 생기면서 작업장과 근로장이 생겼다. 고3 여름방학 때 면접을

보았고 신명이를 잘 본 팀장님 때문에 그해 12월,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신명이가 23살 되던 해였다.


6.

아이가 이제 청년이 되었다. 몸집도 커지고 겉으로 보이엔 너무나 정상적인 아들이지만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보이니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네트워킹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40대, 50대가

되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 일은 지금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현실은 부모가 죽고 난 뒤엔 이 아이들이 혼자가

된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독립을 해야 하는데, 물론 동생들이

있다고 해도 그 아이들은 또 저마다의 인생이 있는 법이다. 이런 독립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당장의 큰 미션이 되어 있다.


7.

특별한 아들과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우리 가족 구성원도 함께 성장한 것이리라. 큰딸은

오빠의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부모의 어려움을 알게 된 듯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는 전날 울면서 오빠와 부모를 걱정하던 대견한 딸, 오빠를 흉허물 없이 친구처럼

대하는 작은 딸, 아들로 인해서 사랑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우리.

아들이 한번 씩 하는 말들이 마치 공기청정기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아들이

우리 가족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 게시물은 예술누리님에 의해 2025-04-15 09:35:47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 정보

회사명 : 회사명 / 대표 : 대표자명
주소 : OO도 OO시 OO구 OO동 123-45
사업자 등록번호 : 123-45-67890
전화 : 02-123-4567 팩스 : 02-123-4568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 OO구 - 123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정보책임자명

접속자집계

오늘
62
어제
268
최대
268
전체
10,614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