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 「 우리 엄마」
페이지 정보

본문
입 선-산문학 이다현
우리 엄마
우리엄마는 장애인입니다. 청각장애 6급을 받았습니다.
아주 어릴 적 일입니다. 엄마 친구분 집에서 하루 자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어 오늘 밤엔 여기서 자야한다’라고 동생과 나에게 과자를 듬뿍 쥐여주고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놀기도 잘 놀고, 먹기도 잘 먹고 잘 지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엄마 친구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유, 큰수술했네 그럼 이제 듣는
건 어찌 되는 거야? 고막이 인공고막이어도 듣는 거엔 문제가 없대?”
그 말을 듣고 우리 엄마가 아주 큰 수술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모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고, <수술>이라는 두 단어가 참 무섭게 느껴져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다음날 이모에게 엄마를 보러 가겠다고 떼를 썼고, 갈 수 없다는 말에 목놓아
울었습니다. 어르고 달래다 결국 엄마를 보러갔는데,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너무 놀라 얼어붙은 저에게 “엄마 안 아파, 괜찮아”라고
위로해주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엄마” 하고 부를 때는 안 들렸다고 하면서 돈 이야기, 엄마 험담을 하면 정말
귀신같이 듣는 엄마가 참 희한하기도 했고, 왜 본인 듣고 싶은 말만 듣는지 짜증도 참 많이
냈습니다. 언니와 내가 속닥거리면서 보너스를 받아 쇼핑가자는 이야기에 “또 쓸데없이
돈 쓰러 가냐?”하고 혼을 내셨고, 남동생이 새벽까지 술을 먹고 조용히 들어와도 “왜
이제 온거냐라”고 어느새 일어나서 동생에게 꿀물을 타주셨습니다. 우린 그걸 보면서 참
속없게도 “엄마는 귀가 어두운 게 아닐 거다”라고 낄낄댔습니다.
그러다 제가 결혼을 하고 두 딸을 연달아 낳았습니다. 난산은 아니었지만 자궁에 큰
물혹이 있어서 두 아이를 낳고 나서 꽤 오랫동안 산후풍에 시달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산후조리를 도맡아 해주셨고, 둘째를 낳고 병원에 있는 동안 첫째 아이도
봐주셨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엄마는 걱정을 하셨습니다. 내가 귀가 안 들려서 아기 우는 소리를 못
들으면 어쩌나 하고요.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고, 영 걱정되면 나 혼자 애들을
보다가 안되면 도우미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역시나 엄마는 “도우미 쓰는 것이 돈이
얼만데! 거기다 남이 봐주느니 내가 봐주는 게 낫지!” 하면서 반대하셨습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일주일만 있고, 그 후엔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밤에 잘 자고, 낮에도 잘 놀아서 별 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2시가 넘어 깬 아이가 유난히 앙앙 울어댔습니다. 수유를 하면
바로 잠이 들었는데, 그날은 뭐가 불편한지 한참을 칭얼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깰까 봐 조마조마하며 베란다로 나가 아이를 달랬습니다. 자정에 깼던 아이는 새벽
다섯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사방이 고요하고, 아이는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도
않았더군요. 갑자기 서러운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여기서 지금 잠도 못 자고 뭘
하고 있는 거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보는데 내 모습이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는 떡져있고, 얼굴은 푸석한 데다가 몸도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습니다.
거기다 손발은 퉁퉁 부어있어서 손가락을 제대로 굽히지도 못했죠. 그렇게 아이 옆에
쪼그려 잠들었다가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습니다. 왜 여기서 자냐고 하길래 간밤의 일을
말했더니, 엄마가 “아이고 난 하나도 안 들리던데.”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안 들리는 거 말 안 해도 다 안다.”라고 쏘아댔습니다. 말하고 나서 미안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도 없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다행히 푹 잤고,
저도 모처럼 숙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한 번씩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워낙
피곤했고, 그냥 누가 화장실을 가는가보다 싶어 계속 잤습니다. 그 다음날도 “달칵”하는
소리가 몇 번 났습니다. 모른 척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아이가 깨서 달래고 있는데
“달칵”하더니 엄마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아이가 “엥” 하고 짧게 울었는데 엄마가 어떻게
알고 깼지 싶었습니다. “아기 우는 소리 들리더나?”라고 물으니, 엄마가 “그게 아니고 니
그저께 밤새 잠도 못 잤다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보청기 끼고 잔다. 그러고 잠도 잘 안 오고,
혹시나 애기 깨서있나 싶어서 들여다봤다.”
잠결에 들은 “딸깍”소리는 엄마가 나와 아이가 혹여 깼는데, 본인이 그걸 못 들을까
싶어서 수시로 들여다보던 문소리였던 겁니다. “엄마는 이제 나 아기 잘 보고, 요즘엔 안
일어난다.”라면서 그러지 마시라고 했지만, 엄마는 “아이고 그래도 내가 불편하다”면서
제가 있는 동안 쭉 그러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용돈을 드렸지만, 끝끝내 받지 않고
기어이 아이 용돈으로 쥐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고, 동시에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평생 고마움을 짊어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엄마는 전화보단 문자메시지를 더 선호하십니다. 전화를 하면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잘
안 들리고, 뭉개져서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전화로 서비스신청을 하거나
안내를 받을 땐 저에게 꼭 대신 받아달라고 합니다. 예전엔 무척 귀찮았습니다. “그럴 거면
그냥 센터에 가서 얼굴 보고 이야기 해.”라고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그럼
그냥 둬라”고 슬그머니 전화기를 내려놓던 엄마. 그게 뭐라고 귀찮아했는지 참 후회가
됩니다.
카카오톡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엄마는 “세상 살기 좋다”라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보단 카카오톡을 이용하고, 또 영상통화도 무료로 가능하자 엄마는
전화보단 영상통화를 하며 손녀들을 만나십니다. 엄마가 모임에 다녀온 날엔 “누구누구
씨는 메시지 보내면서 움직이는 그림도 막 올리던데 그건 어떻게 하냐?”고 하셔서 그건
유료로 구매하는 거라고 했더니 “아이고, 그럼 되었다”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2천
원이면 계속 쓸 수 있다 해도 “2천원도 못 버는데 무슨 그런데 돈을 쓰냐”라고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슬쩍 엄마가 갖고 싶다던 캐릭터를 보고 선물해드렸습니다.
처음엔 괜한 짓을 했다고 하셨지만, 수시로 그걸 쓰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무척
뿌듯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청력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았고, 잠귀는 워낙 예민한지라
‘내가 워낙 산만해서’, ‘다른 데에 집중해서 안 들린 거지 뭐’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0여 년 전에 건강검진을 받는데 검진 결과를 듣던 중 “혹시 가족 중에 청각이 불편한 분
계시나요?”라고 묻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이래저래 해서 장애 시라고 하니, 제가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 정도라면서, 이 정도면 후천적인 부분보단 선천적인 것이 좀 크다고 했습니다.
추후 관리를 잘하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이어폰 사용도 줄이고, 너무 큰 소리를
켜지 않는 등 나름대로 조심하고 지냈습니다. 엄마에겐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본인이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소홀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내가 유전으로
귀가 안 좋다”라고 하면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해서요. 예전 같음 “엄마 나도 귀가 안
좋다네.”하면서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렸겠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겠더라고요.
제가 자식을 키우다 보니 부모의 마음도 이해되고, 자식으로 30년 넘게 살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간의 도리와 예절,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피부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유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식의 아픔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그리고 그 아픔이 나로 인한 것이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엄마에게 제 청력 이상을 말하지 못하겠더군요.
여전히 엄마는 제가 소리를 잘 못 듣는 것에 대해 “네가 주의력이 없고 산만해서 남 말을
못 듣는거다.”라고 알고 계십니다. 저는 그냥 웃고 넘어갑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효도니까요.
사람들은 엄마가 장애가 있다고 하면 굉장히 놀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활기차게 지내시거든요. 엄마의 취미는 장구입니다. 노래교실을 갔는데 자신의 소리가
잘 안 들리고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왕왕 울려서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동네
이모님을 따라 가락장구교실에 갔는데 장구 소리가 커서 너무나 잘 들리고, 일정한 박자와
쉬운 가락에 맞추니 쉽고 재미가 있답니다. 거기다 쿵쿵 쾅쾅 장구를 시원하게 칠 때마다
스트레스도 풀려서 너무나 신이 난다며 벌써 4년이 넘게 배우고 계십니다. 코로나19 이전엔
일주일에 두 번씩 가고, 또 매달 연주회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근 2년간 못하다 얼마
전부터 다시 다니십니다. “내일은 엄마 장구 가야 해서 바쁘다.”라고 호호 웃으시는데,
즐거워하는 엄마를 보니 제 기분이 좋다가도, 그동안 얼마나 갑갑하셨을까 싶어 마음
한편이 짠했습니다. 혹시나 장구 소리가 너무 크고 울려서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냥
짱짱하게 터지는 소리가 좋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풀려서 굉장히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쇼핑몰 장바구니엔 항상 엄마의 보청기 건전지가 담겨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며 번번이 저에게 건전지를 사달라고 하십니다. 구매내역을 보니
이전보다 구매 주기가 부쩍 짧아졌습니다. 코로나19 땐 몇 달에 한 통을 사드렸는데, 최근엔
돌아서면 한 통을 사드려야 합니다. 집에선 항상 보청기를 빼두셔서 거의 쓸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모임에 여행, 취미활동으로 늘 밖에 나가 있는다고 합니다.
덕분에 아빠는 “네 엄마가 일하는 나보다 더 바쁘다”면서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들다고
푸념하시지만, 누구보다 엄마의 활력 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건 아빠라 저렇게 말씀하신
후에 슬그머니 “맛난 거 많이 먹고 오라며 용돈을 주시는걸 봤습니다. 건전지야 유통기한도
없고, 또 몇 개씩 사면 할인이 되는데도 엄마는 항상 한 통만 사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짜증 내지 않고 얌전히 해드립니다. 이렇게라도 한 번 더 엄마와 이야길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저희 엄마는 항상 <괜한데 돈 쓰지 마>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러면서 저와 제 아이들이
먹는 것, 입는 것엔 돈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당신 딸과 사위가 사드리는 것을
편하게 받으시면 될 텐데 “너희 대출이나 빨리 갚아라. 아직 아빠가 현역이니 우리건
우리가 쓰고, 나중에 돈 없어지면 너희가 좀 사주렴.”이라고 극구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께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살 땐 각종 이벤트며 공모전을 끌어들입니다. “엄마 이건
라디오 이벤트 당첨돼서 받은 쿠폰으로 사는 밥이야.”, “엄마 이건 친구가 준 쿠폰인데, 이거
오늘까지 써야 되니까 이걸로 커피 사 먹자.”, “엄마 나 이번에 ***대회에 입선해서 상품권
받았는데 여기 매장 밖에 못쓰니까 엄마 옷 사면 된다.” 등등. 당첨된 이벤트도, 지인의
선물도, 공모전 당선도 된 적 없으면서 매번 핑곌 대면서 엄마와 데이트를 하면 “우리 딸
대단하다!”, “너는 참 당첨 운이 좋구나”하고 신기해하십니다.
사실 전 공모전은 매번 떨어지고, 이벤트는커녕 복권도 당첨된 적 없는 “똥손”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언젠가 진짜로 그렇게 돼서 엄마한테 좋은 식사,
멋진 옷 한 벌 사드려야지.”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우리 엄마”라는 가장 크고 좋은 ‘뽑기’를 했구나! 그러니 난 평생 이런 당첨
운이 없어도 되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멋진 엄마가 내 엄마인데 무슨 운이 더 필요할까요?
- 이전글[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 「 그남자」 25.04.10
- 다음글[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제 삶은 제 것이 아닙니다 」 25.04.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