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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다시 피어날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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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58회 작성일 25-04-1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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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작-산문학 신범호


다시 피어날 자작나무


그 말은 핵폭탄과도 같았고, 온 집안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소변에서 피가 조금 발견되었으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동네 병원의 권유에 따라 대학병원에 다녀온 아내가 담담하게 꺼내 놓은 그 말.

“나 암이래, 일 년쯤 치료해야 하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아내는 보일 듯 말 듯 한 물기를

비추었을 뿐입니다

“뭐? 치료를 일 년씩이나? 대체 무슨 암이래?” 덩달아 놀라며 암이라는 가벼운 입놀림을

해댄 나에게 아내는 소변에 핏기가 비친다는 증세에 대한 정밀 검사 결과가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 2기’로 판정되어 나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통보를 받고도 나를 버려둔 채 혼자서 병원으로 갔던 아내였습니다.

명색이 보호자였던 제가 진작에 좌 반신 마비의 중증 장애인이 되어버린 탓입니다.

내가 내려놓은 가장이라는 명예를 대신 지고 집안 살림을 책임져 온 아내 곁에서 10년

전에 이미 보호자는 사라져 버렸고 다만 아내의 도움에만 기대는 가족들이 남아있었을

뿐입니다. 아내가 잠든 곁에서 천장을 향해 나쁜 결과만은 제발 피해달라고 그렇게

애원하며 빌었건만 슬픈 예감은 밤 거미처럼 찾아와 버린 것입니다.

급속히라는 말이 걸맞을 만큼 나의 중도장애 후유증과 아내의 건강 악화는 마치 경주라도

하듯 평행선을 그리며 서로 하강곡선을 그리며 치달았고, 아내가 평소 지녔던 부정맥

증세를 치료한지 고작 3개월이 지날 무렵 발견된 혈뇨 증상은 아무런 치료 효과도 보지

못한 채 결국은 암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중도 장애인이 되고 눈 앞에 펼쳐진 환경에 겨우 익숙해지려 할 무렵 내 가정에

스며든 혈액암이라는 병마는 또다시 나를 염세와 대인기피 증세에 빠지게 했지만, 그보다도

현실적인 몇 가지 문제- 당장의 치료비 마련과 간병 도우미를 구하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아내의 암 발병이 확정되고 나서부터 저희 가정은 매일처럼 일희 일비의 순간들이

찾아왔고 그로 인한 안도와 두려움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마치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에 몸을 내맡긴 것 같은 혼돈 속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했습니다.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큰아이가 제 어미와 같은 병을 지닌 사람들의 투병 일지를

읽었다던가, 혈액암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올려놓은 각종 사례를 검색한 결과를

종종 전해 줬고, 아내의 눈치를 살피기 여념 없던 나는 행여라도 듣기 민망한 정보를

말할까 두려워 애들에게 당분간은 일희 일비 하지 말 것과, 입조심하도록 당부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혈액암은 착한 암과 나쁜 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70%는 착한 암이고, 다른

장기로 전이가 잘 안되며, 좋은 약들이 많아져서 치료가 잘 되는 암이다!’라는 내용에

안도했다가도 나머지 30%는 ‘치료가 까탈스러워서 환자들 고생이 심하고, 재발이 잘

돼서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는 투병 사례를 접하고는 고생할 아내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유명 의사가 털어놓은 실제 임상사례에 의한 경고성 발언인, “혈액암은

첫날 응급실로, 둘째 날에는 중환자실로, 마지막 날에는 영안실로 가서 만날 각오를

해야 하는 심각한 병이라는 것도 잊지 마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는 조금은

들떠있던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라도 되는 듯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이렇다 할 잔병치레도 없이 잘 살아준 아내가 나에게 생긴 갑작스러운 시련으로

인해, 나 대신에 치르게 된 힘듦과 희생 때문에 얻은 병일 거라는 생각에 뭐라 위로의

말도 변변히 건넬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치료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원치료가 아닌 집과 병원을 오가며 받는 통원치료방식으로 치료를

할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막상 아내 없이는 내 몸 하나 추스르는 것도 어렵기만 한

저였으니까요.


희망은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내의 암은 분명 착한 녀석일 거야,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만 따라 하면 분명

나을거야!’라는 근거없는 자기 암시를 강요하기 시작한 저와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인 침착함을 잊고 말입니다.

아내가 정작 본격적인 항암 면역치료에 몸을 맡기면서부터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암 치료의 후유증들이 바로 내 앞에서 아내에 의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밝혔던 의지와는 달리 후유증에 의한 고통들을 숨기지 못하고 아내 역시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 확연해 보였습니다.

2주마다 번갈아 아내 몸에 주입되는 항암치료 주사제는 먼저 아내의 식욕부터 앗아갔고,

결국 식사를 아예 하지 못하게 된 아내는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있는 영양수액으로 겨우

버텼고 다음에는 결국 더욱 농도가 높은 고농도 영양수액으로 처방을 받아 영양부족을

해결했습니다. 5개월간의 집중 기본 치료를 받는 동안 심각한 체중 감소와 탈모현상이

아내에게 나타났고, 잠시라도 머문 곳에는 어김없이 아내의 푸석하게 변한 머리카락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못해 퀭한 눈만 남은 아내 앞에서 밥을 꾸역꾸역 넘기는 저의

꼬락서니에 스스로도 화가 치솟아 몇 차례나 ‘차라리 이제 그만 끝내자’를 되뇌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암 치료는커녕 그 전에 사람부터 잃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이 들 정도의

어려움에 여러 차례 처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틀 거푸 항암제를 맞고 온 후에는 넘긴 것

없는 위의 진액까지 다 토해내야만 겨우 안정을 취할 지경이었으니까요.

‘당신 기분 어때? 오늘은 더 좋아 보이는데?’ 이런 말, ‘뭐 먹고 싶어? 내가 사다 줄게’ 이런

허튼 말들이 투병 중인 아내에게 잠시 잠깐이라도 위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환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는 앞에서 연민의 표정을 짓는

것조차도 말입니다

코로나가 처음 발견되고, 확산되어가고, 펜데믹 상황으로 변해가던 중 행여라도 아내에게

그 나쁜 증세가 옮겨올까 두려워 저희는 가까운 친척은 물론, 외부인들의 위로 방문도

아예 거절했고, 가족들의 위생관리 강화는 물론, 공기청정기를 추가로 구입하여 온 집안의

공기를 가능하다면 깨끗하게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내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


2019년 3월부터 시작하여 11월에 1차 항암 치료를 마칠 때까지 아내가 식욕부진에 따른

급격한 체력 저하, 탈모현상을 겪으면서도 치료에 온통 몸과 마음을 맡기는 동안 저와

아이들은 처음 펼쳐진 암 환자의 간병이란 낯선 환경에서 너무 서툴고, 지혜롭지 못한

언행을 보였음을 뒤늦게 자각하게 됩니다. 건강하던 시기의 아내였고, 엄마니까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여긴 탓입니다.

아내는 고통스럽기로 소문난 골수검사마저 거뜬히 참아내었고, 피를 만든다는 조혈

모세포 자가 이식을 위하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한 달여간의 무균실 치료 조차

묵묵히 버텨 주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를 위한 아내의 수발은 평소와 거의

똑같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암 환자인 아내에게 빌붙어 빨대 꽂고 사는 몹쓸

기생충이었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TV에서 들려오는 노래 한

구절이나 슬픈 대사 한 마디면 참았던 자기 연민이 서로의 눈물을 솟게 만드니 그럴 때면

서로 얼굴을 돌린 채 눈물부터 감추려고 애먼 눈만 깜빡이곤 했습니다.

이렇듯 천신만고의 1차 치료가 끝나고 주치의로부터 ‘좋아졌네요’라는 아주 짧은 통보를

받은 지 고작 며칠 만에 곧바로 암수치가 또다시 높아졌다며 ‘재발’ 판정을 받고 아내는 2차

세트치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저는 다만 아내가 중환자실로 옮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1차 치료 때와는 다르게 아내는 여러 가지의 새로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통증을 줄여준다는 진통제의 종류와 양도 그만큼 늘어났고

의존도도 높아져만 가는 게 확연해 보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표현력 없는

아이가 아프다 울어댈 때 대신 아파주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곁을 지킬 뿐이어서 애꿎게도

고통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보조 식품이나 주문해 들여놓는 짓이 고작이었습니다.

아내는 매주 목, 금요일 두 차례, 혈액검사 결과에 따른 항암을 겸한 면역치료를 받습니다.

치료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아내는 혹시라도 자신이 먼저 떠나게 될 경우, 혼자 남게 될


제18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품집 | 79

저에 대한 걱정을 꺼내 놓곤 했습니다. “나 먼저 가고 나면 누가 당신을 돌봐주지?”라며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자 다짐을 해보건만 아내가 저를 염려해 주듯이, 저 또한

아내가 자꾸만 가여워져 갑니다. 젊은 날 소홀했던 뒤늦은 후회와 역경에 처하자 함께

나누게 된 참 사랑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되었음도 고백합니다.

계속되는 독한 치료에 아내가 지쳐가듯 세월은 여지없이 우리 마음까지도

허물어뜨렸습니다.

50대를 거쳐 60대, 70대에 접어드는 동안 저희 부부에게도 갱년기가 찾아들었나 봅니다.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마주 앉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자체로도 삶의 쓸쓸함은 충분한데,

간혹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조차 때늦은 연민이 서로의 가슴에 가득함을 느낍니다. 좌 반신

마비의 중증 장애인 남편과 항암치료를 받는 아내 사이를 흐르는 겨울 강의 적막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뚜렷한 전조증상이나 발병 원인 없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와 가정의 안온함을

파괴해버린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원망합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우리 부부가 각자의 가슴 깊은 곳에 애써 감춰두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꺼내어

펼쳐보이게 해준 고마운 존재라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삶은 예전과 마찬가지인데 근심은 자꾸 많아지고 또한 새로워져 갑니다.

아내가 아프고서 간혹 저에게 했던 말 대신, 이제는 제가 되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텐데

어떡하지?”하고 숨겨뒀던 걱정을 속절없이 꺼내곤 합니다.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립니다. 근심, 걱정, 두려움 죄다 감싸주려는 듯 눈이 내립니다.

하얀 눈이 덮인 자작나무 숲은, 겨울 숲을 외롭게 누비는 하얀 표범의 무늬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이 납니다. 자작나무는 암 수가 한 그루이고,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는

나무입니다.

보기보다 단단하고 치밀한 목재여서 팔만대장경으로도 일부 만들어졌다고 하는

자작나무.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에게서 느꼈던 고고하고 단아함을 생각하여 제 느낌과

약속들을 자작나무껍질에 새기듯 종이에 글로 적어 아내에게 건넸던 추억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사랑이 어언 50년을 이어 온 셈입니다. 우리 부부의 삶도

자작나무처럼 치밀하고 단단하게 익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생의 끝을 바라보며 그 끝과 마주할 시기가 다가오니 또다시 큰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 아내와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입니다. 아내는 처음 그랬듯이 내 마음속 한

그루의 자작나무처럼 다시 단단하게 자랄 것임을 믿습니다. 저도 아내에게 그렇게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아내는 3차 항암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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