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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엄마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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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57회 작성일 25-04-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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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작-산문학 김해인

엄마의 보물




“할머니 내가, 내가.”


호기심 많은 외손녀가 외치는 말이다. 봄 농사철이라 돌봐 줄 사람 없어 위험하다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갔더니 고사리 손으로 뭐든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삽질을 할라치면 “할머니 내가.” 호미질을 할라치면 “할머니 내가.” 이러고 외친다. 농기구는 위험한데 굳이 해 보고 싶다고 하니 안 줄 수도 없고.

삽질을 다 하고 검은 비닐을 씌워 놓고 씨앗을 심으려 하니 또 “할머니 내가.”를 외친다. 자기 의견을 안 들어 주면 금세 울어 버려서 참 성가시고 시간이 걸리지만 고사리 손으로 하겠다는 마음이 예뻐서 손녀의 말을 들어준다.

“태린아! 땅콩은 3알씩 넣어야 해.” 하니 이제 5살이라 숫자도 알아들어 하나 둘 셋 하며 구멍마다 열심히 넣는다. 그다음은 대파를 심으려 두럭을 만드는데 또 자기가 땅을 파겠다고 삽을 가져간다. 열심히 삽질하는 모습이 제대로 각이 잡혔다. 웬만한 일꾼보다도 더 자세가 좋다. 두럭 위에 비닐을 씌운다고 하니 자기가 비닐을 당겨 주겠다고 끌고 간다. 태린이 덕분에 지체될 것 같던 일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된다. 실파를 심는데 뿌리가 작기도 하고, 태린이의 시력이 아직은 미발달 상태인지라 실파의 위아래를 거꾸로 심기도 했다.

“태린아! 파는 뿌리가 있는 곳이 아래야. 아래쪽을 땅속에 묻어야 잘 자랄 수 있는 거야 알았지?” 

“네.”

대답은 열심히 잘한다. 그러면서 또 거꾸로 심는다.

힘들고 피곤해서 텐트에 가서 잘 만도 한데 하루 종일 삽질하랴, 호미질하랴, 씨앗 심으랴 일일이 참견하고 뭐든 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쟁이 태린이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이 결혼해서 낳은 손녀이다.


엊그제 ‘으앙’ 하고 태어난 듯한데 금세 자란 것만 같아 내게는 예쁘게만 보인다. 

양육자인 청각장애를 가진 사위와 딸은 죽고만 싶은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의 사랑스런 첫딸 은경이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홍열을 심하게 앓아 청력을 잃었다.

사위 또한 자라면서 2살 경에 홍열을 심하게 앓아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은경이가 워낙 어리고 말을 배우기 전 나이에 청력을 잃어서 다른 곳에 정신을

집중해서 내 말을 못 듣나 생각했다. 돌이 지났는데도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질 않는다.



호기심 많은 외손녀가 외치는 말이다. 봄 농사철이라 돌봐 줄 사람 없어 위험하다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갔더니 고사리 손으로 뭐든 자기가 하겠다고 나선다. 삽질을 할라치면

“할머니 내가.” 호미질을 할라치면 “할머니 내가.” 이러고 외친다. 농기구는 위험한데 굳이

해 보고 싶다고 하니 안 줄 수도 없고.


삽질을 다 하고 검은 비닐을 씌워 놓고 씨앗을 심으려 하니 또 “할머니 내가.”를 외친다.

자기 의견을 안 들어 주면 금세 울어 버려서 참 성가시고 시간이 걸리지만 고사리 손으로

하겠다는 마음이 예뻐서 손녀의 말을 들어준다.


“태린아! 땅콩은 3알씩 넣어야 해.” 하니 이제 5살이라 숫자도 알아들어 하나 둘 셋

하며 구멍마다 열심히 넣는다. 그다음은 대파를 심으려 두럭을 만드는데 또 자기가 땅을

파겠다고 삽을 가져간다. 열심히 삽질하는 모습이 제대로 각이 잡혔다. 웬만한 일꾼보다도

더 자세가 좋다. 두럭 위에 비닐을 씌운다고 하니 자기가 비닐을 당겨 주겠다고 끌고 간다.

태린이 덕분에 지체될 것 같던 일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된다. 실파를 심는데 뿌리가 작기도

하고, 태린이의 시력이 아직은 미발달 상태인지라 실파의 위아래를 거꾸로 심기도 했다.


“태린아! 파는 뿌리가 있는 곳이 아래야. 아래쪽을 땅속에 묻어야 잘 자랄 수 있는 거야

알았지?”


“네.”


대답은 열심히 잘한다. 그러면서 또 거꾸로 심는다.


힘들고 피곤해서 텐트에 가서 잘 만도 한데 하루 종일 삽질하랴, 호미질하랴, 씨앗 심으랴

일일이 참견하고 뭐든 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쟁이 태린이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이

결혼해서 낳은 손녀이다.


남들보다 집중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못 들으면 아예 아무것도 못

듣고 말도 전혀 못해야 하는데 ‘엄마’, ‘아빠’, ‘물’처럼 간단한 단어는 구사하고 문을 몰래

열고 나가려 하면 귀신같이 알고 안 떨어지려고 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저음이 좋으니 문소리는 알아듣고 사람의 말은 주파수가 중음이라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사촌 형님께서


“은경이가 아무래도 귀에 문제가 있나 봐. 불러도 대답을 안 하는 거 보니.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말고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판단하여

세브란스병원에 예약을 하고 이것저것 병원에서 해 보라는 검사는 모두 해 봤다.


“청력이 난청이네요. 해 줄게 아무것도 없으니 특수학교나 보내셔야겠네요.”


한마디 툭 던지고 의사 선생님은 나가 버렸다. 참 어이없다. 의사로서 기본이 안 돼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도 환자한테는 하늘이 무너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인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특수학교나 보내세요. 보청기도 필요 없어요.”


이러고 획 나가 버리는 권위적인 의사.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의사였다.


의사가 그리 말하는 바람에 난 보청기도 해 줄 생각도 못하고 그냥 집에 와서 6개월을

지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혼자 밖으로 다니기도 하고 외출을 할 때면 아이가 둘이다 보니

손을 안 잡고 갈 때도 있는데 골목길에 차라도 지나가면 옆으로 비키질 못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말은 못하더라도 소리를 듣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아이를 들쳐 없고 무작정 큰언니를 불러 종로로 나가 봤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도 보청기

회사는 없었다. 모두 의료기상사만 있을 뿐 우리 은경이처럼 난청환자에게 보청기를 해 줄

만한 곳이 없었다. 5시가 넘어 마지막으로 들어간 의료기상사에서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청기 회사는 종로에는 없어요. 장안평 중고시장 앞에 있는 대한보청기라고 있는데 그곳에

가셔서 상담을 해 보셔야 할 거 같네요.”라고 하며 친절하게 전화번호를 적어 주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하루 종일 헤매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고 막막하던 나에게

단비가 내린 듯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큰언니와 만나 같이 대한보청기를 찾아가 상담을 해 보니 보청기 가격이 우리

형편에 너무 큰돈이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40만 원이었는데 최하가 58만 원이고 조금 좋은

것은 86만 원이란다. 겨우 한 달 월급 타서 먹고사는 서민에게는 날벼락 같은 가격이었다.

내가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자 직원은 보청기를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바쁘다고 들어가려고 하자 같이 동행한 언니가 “좀 기다려 보세요. 얘가 금액이

너무 비싸니 얼이 빠져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그리 보채시면 어째요.” 하며 한마디 하니

잠시 기다려 주셨다.


나는 어찌 됐든 보청기를 해 줘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어떤 것을 해 주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럼 아직 나이가 어리니 좋은 제품은 아니더라도 소리만이라도 듣고 위험을 면할 수

있게 질이 안 좋아도 좋으니 싼 걸로 해 주세요.” 하고 58만 원짜리를 맞추고 돌아왔다.


일주일 뒤에 다시 보청기 회사를 찾았다.


우리 은경이는 보청기를 착용하자 금방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환해지며 좋아라 했다.

직원분도


“보청기를 아주 잘하고 지낼 것 같네요. 보통 아이들은 처음 보청기를 끼워 주면 빼

버리는데 은경이 얼굴 표정을 보니 소리가 잘 들려서 오히려 빼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길

듯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라며 은경이를 칭찬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은경이는 세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완전

전농이 아니고 저음을 듣고 살아서 그런지 보청기 소리에 적응을 잘했다. 잠잘 때 외엔 절대

보청기를 빼는 일이 없이 얌전히 착용하고 지냈다.


보청기를 사용하니 이제는 말을 할 수 있게 해 줘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특수학교를 알아

보았다. 당시 선희 학교라는 국립청각장애특수학교에 입학을 하여 3년 동안 연년생인

동생까지 둘을 데리고 다녔다.


눈이나 비가 올 때면 안고 업고 학교에 다니며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5살 첫해에는

자음모음으로 시작해서 간단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단어로 발음 연습을 하고 그러다 보니

한글을 자연스레 5살에 뗐다. 6-7살에 문장을 만들어 외워서 독해연습을 했는데 그 당시

홍은동에 살던 나는 세검정길을 지나 효자동에 있는 현)농아인학교로 다녔다. 세검정길은

4계절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어 은경이에게 언어 연습을 시키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세검정길을 보여 주며 봄철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봄에 피는

꽃이라고 설명해 주며, 계절과 꽃 이름과 색깔을 알려 주는 세검정 길은 은경이에게 좋은

소재가 됐다. 집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설명해 준 내용을 문장으로 만들어 외우고 독해를

2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언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비장애인에 비해 언어 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비장애인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인으로 성장할 것 같아 과감히 일반

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좋은 담임 선생님과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새벽 기도 시간을

가졌다. 만남의 축복을 기도하고 마음 졸이며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초등학교

졸업을 하는 감격을 안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고맙게 사춘기나 특별한

문제없이 얌전히 졸업을 해 주었다. 이 생각은 순전히 나에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당사자인

은경이는 수많은 마음고생을 하며 심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녔을 시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은경이에게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 작은 아이 승규는 소외되어 어른들의 관심과

손길에서 멀어졌다.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모든 비장애 아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듯하다.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언제나 두

번째로 밀리다 보니 애정결핍증이 생긴 모양이다.


나의 무지함은 은경이 문제만 크게 눈에 들어왔지 비장애인은 알아서 잘 클 거라는

착각 속에 빠졌던 것이다. 은경이에게 모든 시선과 관심을 쏟아붓는 사이 승규는 혼자

자랐고, 애정결핍이라는 큰 장애를 또 안겨 줬던 것이다. 그것도 승규가 중학생이나 돼서야

깨달았으니 나의 무지에 가슴이 또 한 번 무너졌다.


이때부터는 늦었지만 승규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최대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픈 마음에 두 자녀 사이를 오갔다.


그런 마음에서인지 나는 현재 장애아 부모를 만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비장애 자녀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을 한다. 내가 걸어온 잘못된 전철을 다른

비장애 자녀에게는 안겨 주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또 다른 산이 기다렸다. 대학이라는 또 다른 산! 대학

진학을 놓고 고민하고 이리 저리 알아보는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계셨는지 생각지도

않은 장애인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천안에 나사렛대가 있는데 그곳은 장애인에게 천국이라더라~ 우리 거기 보내 보지

않을래?”


라고 제안을 해 왔다. 이것은 고민하는 나에게 하나님의 응답이셨다. 주저하지 않고

나사렛 대학에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봐야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입학을 할 텐데 엄마

아빠가 직장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으니 그 멀고 초행길을 혼자 물어물어 가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을 시키고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돌아온 우리 은경이는

얼굴도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변하고 어휘력도 일취월장하여 내가 짐작도 못했던 어휘를

구사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였구나!’ 수업시간마다 문자통역에 수화통역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나사렛대학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눈에

뛰게 변한 모습을 보고 그동안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이란 긴 세월을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했을까? 하는 마음이 한순간 들며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렇게

대학생활을 잘 마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 ‘사람 구실을 하고 살게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처음 장애인 판정을 받았을 땐

평생 내가 지고 갈 십자가로구나 생각했었는데 자기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제 활동을 해서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겠지만 결혼까지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얼굴이 예쁘고 성품이 고와서인지 은경이를 탐내는 남자 아이들이

많았지만 딸아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친구로만 지내고 결혼은 안 하겠다고 그냥

엄마랑 살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며 남자를 데리고 오겠단다.

그것도 같은 청각장애 남자라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는지 자기보다 발음도 좋고

시댁 어른들도 아주 좋다고 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동안 비장애인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내 젊음을 바쳐 키워 왔건만

장애인에게 가겠다니 하늘이 노래졌다. 비장애인 사위를 보겠다는 것은 내 욕심이었나

보다. 우리 은경이가 그동안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까닭이 장애를 안고 있는 자기 자신이

시댁과 배우자와 잘 살 자신이 없어 결혼을 포기했던 것일까? 자기와 같은 장애인과

시댁가족들의 화목함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한 우리 은경이가 나보다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부모의 무모한 욕심보다 현명한 판단으로 자기 배우자를 선택하여 지금 벌써 결혼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볼수록 의젓하고 가장으로서 역할 잘하고 있는 믿음직한 내 사위! 끝까지

반대하지 않길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첫 대문을 열며 소개한 예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한 손녀도 얻고 알콩달콩 잘 사는 모습이 그 어느 부부보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처음 보청기를 해 줄 때는 위험 신호만이라도 감지해 줬으면 했던 보청기가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엄마와 아내 역까지 잘해 내는 장한 우리 딸로 만들어 줬다.


나는 아직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가 젊음을 바쳐 키운 내 딸이 이렇게 한 가정을 잘

꾸려 가는 모습을 보니 여한이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정말로 더 큰

욕심이 없고 지금처럼 서로 아끼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손녀딸 태린이를 잘 키우고

알콩달콩 산다면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고 더 바랄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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