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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입선 _「엄마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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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64회 작성일 25-04-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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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소풍


입    선-산문학 박재균



예순여섯의 아버지를 허망하게 여의고 일찍이 홀로된 엄마는 어지럽고 복닥거리는

서울은 잠시도 못 살겠다고 닷새도 지나지 않아 도로 시골로 내려가셨다. 지척의

외할머니와 제종 고모님이 든든하게 계시고, 말벗도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며 우릴

안심시키고는, 읍내 시장 마늘전(田)에 날품팔이로 냉큼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감이

죽어서 더는 농사도 못 짓게 생겼는데 사지 육신 멀쩡한 몸으로 맨날 놀면 못 쓴다고, 몇

푼이라도 버는 재미에 마늘, 고추 같은 농특산물을 가다듬는 험한 일에 매달린 것이었다.


고된 일이었지만 쏠쏠한 소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엄마는 그것을 보람이라고

여겼다. 머잖아 막내인 날 장가보내려면 만만찮은 결혼 밑천이 들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조용한 엄마의 일상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크게 변하고 말았다.

뇌진탕에 좌측 상완골이 골절되는 큰 사고였다. 천만다행히도 생명이 위독하진 않았지만,

늘그막에 닥친 몹쓸 교통사고의 엄중한 충격은 엄마의 건강한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 후 옆에서 큰 의지가 되었던 외할머니와 제종 고모님 내외분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불귀의 객이 되자 두메산골과 다름없는 시골에서 엄마는 그야말로 혼자가

되었다. 잠시 내가 자취하고 있는 서울에 머물렀지만, 시골집을 마냥 비워놓을 순 없는

노릇이라고 이내 돌아가고 말았다.


엄마가 알츠하이머성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여름이었다. 그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귀여운 아들까지 하나 낳았다. 아무래도 노친네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형의 느닷없는 성화에 미리 연락도 없이 먼 길을 득달같이 달려가 확인해 본

엄마의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며칠간 통 씻지 않아서 꾀죄죄한 몰골과

쑥대머리처럼 떡지고 기름진 머리도 그렇거니와 심지어 정돈하지 않은 이부자리와

방바닥에 대소변을 찔끔찔끔 지린 흔적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혹할 정도였다.


비록 농사꾼인 아버지를 쫓아 땅을 일구고 사는 가난한 시골 촌부였지만, 엄마는 항상


반듯하게 쪽 찐 머리와 정갈한 옷차림새가 학처럼 깨끗하고 고고했고, 부지런하고

한결같은 성품 또한 온화하고 자상해서 어린 나에겐 늘 자랑거리였고, 그런 엄마가

있어 행복했다. 엄마의 병세는 경증 치매로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아직 사리 분별 잘하고 인지능력도 멀쩡한데 뭐가 더럽고 무섭다고 처음부터

요양원 타령이냐고 형과 크게 다투고는 다짜고짜 엄마를 서울로 모시게 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행복했다. 밤새 푹 주무시고 일어난 엄마의 이부자리는 당신도 모르게 오줌을

싸놓는 바람에 늘 축축했다. 이불이야 깨끗하게 빨고 몸도 개운하게 씻기면 그만이라

고생이라는 생각보단 엄마의 병이 더 깊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갑자기 늘어난 엄마의 식탐에 아옹다옹하는 일은 예사가 되었고, 두 번에 나눠 드실

약을 한 번에 먹는다거나 화장실 문을 잠근 채로 문을 닫아버리는 일, 또 의식이 흐려져

헛것을 보는 환각과 섬망 등의 증세는 점차 뚜렷해졌다. 이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최악의 상황이 오면 그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머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치매가

완치되는 비현실적이고 엉뚱한 기적만을 바라고 있었다. 한번 발병한 병은 백약이

소용없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위험한 폭주 기관차 같았다. 잠시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위험했다.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처음의 행복하고 든든한 마음은 차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병든 노인을 왜 하필 막내인 내가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와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또한 과중한 스트레스와 책임감으로부터의 현실도피, 이만하면 내 역할은

충분히 했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알량한 자기 합리화로 이어져 나도 모르게 가엾은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심지어 고함도 마구 칠 정도로 불손해졌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은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생불생사불사(生不生死不死)의 신세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엄마는 모든 것이

당신 탓인 양 죄스러워했다. 바람을 쐬러 집 앞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도

금방 방향감각과 지남력을 잃고 이리저리 길을 헤매기 일쑤여서 별안간 온 동네를

헐레벌떡거리며 찾아다녀야 했다. 혹시 찻길을 지나다가 또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연락처가 적힌 큼지막한 이름표를 목에 걸어 주었는데 혹시 귀찮다고 떼어버리진

않았는지, 당장 행방불명 신고를 해야 하는지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인근 파출소에서

길을 잃은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으니 얼른 모시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달려간 파출소에서 엄마는 면목 없다는 듯 아들을 미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안도와 속죄의 눈물을 흘리며 늙은 엄마를 아이처럼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후에도 똑같은 일은 두어 번 더 반복됐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엄마의 산책은 늘

무사히 귀가로 마무리되었다.


아아~ 언제였던가?


얼굴에 여드름 꽃이 무성하게 피기 시작하던, 수줍던 중학교 사춘기 시절이었을까.


석양이 곱게 물들던 방과 후 교문 앞에서도 신작로 가장자리로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던

당신을 보았었다.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던 길, 당신도 문득 막내아들을

돌아보고는 리어카를 멈추고 이쪽을 향해 반갑게 걸어오셨다. 나는 갑자기 교실에 뭘

빠뜨리고 온 것처럼 당신을 못 본 척하고 뒤돌아서서 학교 안으로 뛰어가 버리고 말았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키워주시고, 내 꿈을 응원하셨고, 결혼식장으로 날 인도해

주셨고, 또 내가 슬픔에 잠길 때 위안이 되어주셨던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 그런 당신을

무엇이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외면하고 돌아섰던 철부지 시절의 몹쓸 짓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과 회한으로 남게 되었다.


정말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다른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 이런 현실이 내 마음을 문득 상하게 하지만 나는 상처뿐만 아니라 다 펼치지 못한

꿈도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어떤 것들은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저 당연하게 회피하고 비겁하게 넘기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드는 것이 자연현상이고, 엄마도 인생의 수레바퀴를 엄숙하게 따라갈 뿐인

것을 나는 왜 그걸 애써 부정하려고 주위를 힘들게 만들면서 안달했던 것일까.


엄마는 이제 병중이 더욱 깊어져서 휠체어에 의지해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씻고 밥을 먹는 것조차 도우미의 손길이 있어야 하고, 가끔 자식들도 몰라보는 데다

똥오줌도 가리지 못해서 어른용 기저귀를 상시 차고 살아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자기의 엉덩이를 닦아줘야 한다는 수치심과 비애를 느낄 수도 없다. 작동을 멈춘


부품처럼 뇌가 천천히 굳어져서 완전히 화석으로 남는다고 해도 당신을 하늘처럼

끝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마음을 밝힐 길이 없을까. 이 분이 내 훌륭한 엄마였다고

세상에 맘껏 자랑하고 싶은데 해소할 수 없는 답답한 갈증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외톨이가 된 엄마는 늘 혼자였었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도 혼자였고,

혼자인 것이 너무 두려워서 자식이건, 누구건, 어서 빨리 전화기가 울리기를 바라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당신의 처지를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건강마저도 소홀히 했던 때가 많았다. 문득 그 시절에 엄마가 느꼈을 절망적인 고독을

생각하면 불현듯 가슴이 미어졌다. 품 안의 모든 것을 다 퍼주고 일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한 보상은 일 년에 두어 차례 맞는 명절에 마치 순례하듯 고향을 찾았다가 잠시

북적거리는 소박한 행복뿐, 그마저도 금방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엄마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아득한 외로움 속에 쇠락해 가는 건강과 나날이 빨라지는 노화는 긴긴 겨울밤에

삭풍처럼 사무쳐 왔을 것이고, 늙은이를 평생토록 품어온 오래된 시골 기와집 또한

보수공사도 변변히 하지 못해 그곳에 살아가는 주인과 함께 다 허물어질 지경이었다.

내년 이맘때가 되어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늙은이와 집은 되돌릴 수

없는 나이를 먹고 더 쭈그러들 테고 이대로 그저 조용히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절망도, 공포도, 원망도 사라진 지 오래, 남은 것은 오직 혼자라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했을 때 엄마는 돌연 어딘가로 소풍을 떠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풍.


엄마가 부디 따뜻한 봄 소풍을 떠난 것임을 소망한다.


근심 걱정 없이 마냥 즐겁고, 아무 고통이 없는 행복한 소풍이기를 나는 소망한다.

투쟁도, 회한도, 선망도 없는, 천국처럼 아름다운 나라로의 소풍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소풍이 부디 편안하고 안온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

백화만발(百花滿發) 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기를 지극히 소망한다.


나는 그 옆에서 듬직한 길잡이와 다정하고 믿음직한 동행이 되어 드리면 엄마는 그걸

로도 충분히 만족해하시고 환히 웃어주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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