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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가작 _「제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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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25-04-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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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작-산문학 이경애


제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세요



저는 이름이 두 개입니다. 하나는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이경애, 또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홍 글씨처럼 온몸에 찍혀있는 이름,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뇌성마비’라는

이름입니다.


엄마는 21살 때 나를 낳았다. 집에서 22시간의 긴 진통 끝에 낳았는데 내가 울지도

않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고개를 흔드셨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희망을 놓을 수 없어 선생님께

매달렸지만 똑같은 말만 하셨다고 한다. 한참 후, 엄마는 원이라도 없게 주사라도 놔

달라고 선생님께 애원을 했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너무 작은 나의 몸에는 주사를 못

놓고 머리에 주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슬프고도 비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나를 받아 안은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훔치며 의식도 없는 나를 이불을 덮어

방 한쪽에 놓고 나가셨다. 그리고 엄마가 들을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많이도 우셨다고

한다.


엄마는 눈물로 백 년 같은 긴 시간의 밤을 보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어디서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걷어 올리니, 내가 살겠다고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 작은 울음소리였지만, 엄마에겐 천상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들렸고 희망이 보였다고 했다.


나는 발육이 늦었다. 6살 때 첫발을 떼는 순간, 부모님은 너무 좋아서 서로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가슴이 벅차다고

말씀하신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 내가 어떤 장애인지... 알고 있어요?...”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엄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우리 집에 불이 났고,

그래서 엄마가 많이 놀라서 내가 아프게 태어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엄마가 22시간 동안 긴 진통에도 나는 나오지 않고, 그때... 내 머리에 산소가

부족해서.. 그래서...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그때 처음으로 내 장애에 대해 말을 했다. 엄마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눈물만 흘리셨다. 한참 후, 엄마는 나를 아프게 바라보며 “나는 참 바보 같은

엄마야... 딸이 태어난 지 55년 만에 딸 장애가 어떤 장애인지 알다니... 변명 같지만...

나는 네 장애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냥 사랑스럽고 어여쁜 내 딸이야...”라고 말을 한

후,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고 “ 미안하다... 나 때문에... 하지만... 나에겐

너는 장애인이 아니야. 그냥 내가 보듬어 주고 사랑하는 내 딸이야”라고 말씀을 하시며,

나를 꼭 안고 서럽게 많이도 우셨다.

9살 때, 나는 장애 때문에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친구 엄마들은

3일 만에 친구를 혼자 학교에 보냈지만, 엄마는 한 달 동안 나를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한 달 후, 엄마는 나에게 자립심을 키워 주기 위해, 아프지만 눈물을 삼키고

나를 혼자 학교에 보냈다. 학교에 가는 길은 눈물이었고 고행이었다. 다리에 힘이

없는 나는 넘어지고 넘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무릎과 손에는 피와 흙이 엉겨 붙어

엉망이었고, 너무도 많이 울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런 일은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넘어져서 아프고,

친구들이 놀리고, 친구들은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는데 나만 교실에 혼자 있기 싫다고

떼를 써서 매일 엄마 심장에 대못을 쾅쾅 박았다.


어느 날, 엄마는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네가 학교에 가지 않고 공부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거야. 엄마는 엄마 딸이 바보인 거 싫어. 그리고 네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엄마가 많이 아픈데 그래도 좋아?”라고 엄마는 피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아픈 눈물을 보았다. 무서웠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엄마가 멀리 도망갈 거 같았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엄마 울지 마, 학교에

갈게요. 울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을게.”라고 말을 하며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 주며 울고 울었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지도 않았고 때도 쓰지도 않았지만, 내 무릎에는

늘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밖에 나갔다 오면 친구들이 놀리고 때린다며 울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셨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엄마의

심장은 찢어지고 찢어져 숨도 잘 쉬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엄마와 같이 시장에 가고 있었는데, 나를 보면 *신이라고

놀리고, 때리는 아이가 있었다. 그때도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신이라고 놀리고, 내가

걷는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엄마는 그 아이를 잡아 혼도 내고 타일러서 보냈다.

그때 나는 너무 좋아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엄마는 얼른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며 눈물을 닦고 계셨다.


시간이 많이 흘러, 우연히 나는 그때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날, 엄마가 그

아이를 야단치는데, 그 아이가 울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매일 그 아이가 놀리고

때려서 울었는데, 반대로 그 아이가 우니까,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가 하늘을 보고 울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이

조그마한 가슴에 화살로 꽂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또 울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밉고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엄마 앞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어요... 나만 없으면... 엄마는 눈물 흘리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 뒤부터는 밖에서 어떤 놀림을 당해도... 엄마가 슬퍼하고 고통스럽게

울까봐 이야기를 못 했어요.”라고 말을 하니 엄마 는 아무 말 없이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라고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조금 있으니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는 세상을 뒤엎는 천둥소리 같았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불편한 몸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아프게 학교를 다녔다. 엄마하고

약속한 것을 깨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내가 개근상을 엄마께 드리면

“수고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상이야.”라고 말을 하시며, 내 아픈 다리를

오랫동안 주물러 주셨다. 개근상은 위대하고 소중한 엄마께, 내가 드리는 감사와

사랑의 표시였다. 엄마는 아직도 그 상장을 소중히 보관하고 계신다.


나는 27살에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했다. ‘몸이 약해 아이를 못 낳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결혼 1년 만에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한

달 동안 엄마는 정성껏 나와 아들을 위해, 잠도 못 주무시고 일을 하셨다. “쉬면서

하세요.”라고 말을 하면, 엄마는 “괜찮다.” 하시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하시며

나의 산후조리를 해주셨다.


한 달 후, 산후조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엄마 아버지 그리고 나의 분신인

아들과 같이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 앉지도 않으시고 미역국도 넉넉히

끓여 놓고, 아들도 씻겨 재우고, 빨래도 빨아 널어 놓으셨다.


얼마 후, 부모님은 갈 채비를 하셨다. 그 모습에 나는 참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엄마 가지 마... 흑흑흑.”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가지 말라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떨리는 손으로 한참

동안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고,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담배연기와 함께

눈물을 나려 보내고 계셨다.


얼마 후, 부모님은 눈물을 뿌리며 집으로 가셨다. 나는 겁이 났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소중한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도

무섭고 무서웠다. 배고프다고 우는 아들을 안고, 나는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모든

일이 어렵고 힘이 들었다. 엄마한테 아들을 맡기고 잠 좀 실컷 자고 싶어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또 속상해하실까 봐 나는 도를 닦듯 참고 참았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내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했다.

힘들고 힘들었지만, 엄마가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듯이 나도 아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보듬어 키웠고, 그것에 보답을 하듯 아들은 나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며

튼튼하게 잘 자라 주었다.


아들이 첫돌을 넘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였다. 아들과 친정집에 갔다. 아들은

외갓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한쪽 구석에 있는 포대기 끈을 잡고 무조건 할머니

등으로 가서 업어 달라고 했다. 아들은 등에 업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면 엄마는

얼른 손자를 업고 밖으로 나가 손자가 잘생기고 건강하다고, 이놈이 경애 아들이라고

친구분들에게 자랑을 하셨다.


엄마는 밥을 먹을 때도 손자를 업고 식사를 하셨고, 잘 때까지 손자를 업어 주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엄마는 손자와 함께 생활을 했다. 그 모습에 “엄마,

지성이는 나한테 업어 달라고 말 한마디도 안 하는데, 엄마만 보면 업어 달라고

하네...”라고 슬프게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네 등은 작고, 내 등이 커서 나한테

오는 거야.”라고 말을 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고 얼른 손자를 업고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얼마나 아들을 업고 싶어 하는지 잘 알기에, 엄마는 또 ‘건강하게 못

낳아줘서...미안하다’라며 속으로 폭포수 같은 울음을 삼키고 삼키셨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지금은 두 아들이 건강하고 착하게 잘 커서 취직도

하고, 나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똑똑하고

예쁘다고 말을 해주는 두 아들이 있어, 힘들었던 지난 기억들은 깨끗이 사라졌다.


작년 7월, 엄마는 어깨에 인공 힘줄을 잇는 큰 수술을 하셨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나는 열심히 엄마의 간호를 했고, 퇴원을 하고 나서는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항상 엄마와 동행을 했고, 엄마가 어느 정도

팔을 움직일 때까지 나는 엄마와 함께 했다.


엄마가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엄마께 받은 사랑을 아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힘든 줄 모르고 엄마 간호를 했다. “나 때문에 네가 힘들어

어쩌니.”라며 엄마는 걱정을 하셨지만, 나는 그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꼭 안고

“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하곤 했다. 정말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보름 후,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엄마 집으로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청소도 하고, 엄마 손을 잡고 산책도 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다리에는 쇳덩이가 무겁게 붙어 있는 듯했고, 손목은 아파 나를 원망하듯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드리고

싶었다. 아무 조건 없이 엄마가 무한한 사랑을 나에게 주신 것처럼.


수술하고 몇 개월 후,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 있으면 오라고 했다. “내일

갈게요.”라고 말을 하니, 엄마는 꼭 와야 한다며 다짐을 받고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엄마는 해바라기 같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계셨다. 엄마는 한의원에 가서 내 보약을 지어 주셨다. “엄마가 보약을 해 주셨으니,


제가 맛있는 점심 사 드릴게요.”라며 나는 엄마를 모시고 고깃집으로 갔다.

엄마와 같이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점심을 먹고 조용한 커피숍으로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도 마셨다. 친구분들 이야기도 하며 엄마는 즐거워하셨다. 소리 내어 웃는

엄마의 모습이, 18세 소녀처럼 예쁘고 예뻤다.


한참 후,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내가 8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수술을

해보니, 너무 많이 무섭고 힘이 들더라. 그때마다 네 생각이 많이 났어. 너는 수술을

7번이나 했는데,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네가 아프고 힘든 거

몰라줘서 미안하구나.”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경애야, 다음 생에도 다시 내 딸로 태어나 줄래?, 그러면 예쁘고 건강하게 낳아줄게.

사랑도 더 많이 줄게. 그러니 엄마 딸로 꼭 태어나줘.”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네

그렇게 할게요. 다시 엄마 딸로 예쁘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엄마 울지 않게 해드릴게요.

늘 웃게 해드릴게요. 약속 꼭 지킬게요.”라고 말을 하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과 함께

복사까지 하니,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

다음다음 생에는, 엄마가 제 딸로 태어나 주세요. 그때는 엄마에게 받은 하늘같은 사랑

다 갚을게요. 그렇지만 지금은 제 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있어 주세요.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녀요.”라고 말을 하니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나는 엄마 눈물을 닦아주고, 엄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 환하게 웃었다.

저를 지혜롭고, 예쁘고, 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 딸로 태어난 건,

저에겐 아주 큰 축복입니다. 세상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위대하신 우리

엄마,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이 게시물은 예술누리님에 의해 2025-04-15 09:37:23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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