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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전국장애인문학제 수상작] 최우수상 _「절반의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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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술누리 작성일 25-04-07 15:48 조회 16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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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산문학 임진희


                                                          절반의 꿈


“절반만 보이는 세상을 알아?”

아까부터 나는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했다. 그때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손거울을 내려놓고 확대경을 손에 들려주셨다.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확대경을 내려놓고 손거울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잠시 후 현관문에서 신발 밑창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엄마가 가장 아끼는

가죽 구두일 것이라고, 나는 상상했다. 엄마가 현관문을 밀치고 나가실 때 들려오는

소리의 강약을 계산해보면 어젯밤에도 오빠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모두 그림자로 이루어진다. 엄마가 내 이름 부르실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여자친구와 헤어진 오빠의 슬픔이 얼마나 쓰라리고 아픈지,

소리와 그림자의 움직임만으로도 나는 금방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자의

미미한 움직임이나 소리를 감정으로 해석하고, 그림자의 형태를 감정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남다르게 진화했다.


어려서부터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왜 그림자뿐인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의문의 불씨를 잡아당겨 준 사람은 의사였다. 그때가 아마

유치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다. 지독한 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큰 병원이었다.

엄마는 나를 딱딱한 의자에 앉혀 놓고 내 손을 잡고 계셨다. 의사는 둔탁한 무언가를 내

눈에 이리저리 들이대며 두툼한 목소리로 한참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태어난 겁니다.”

의사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때 엄마의 외마디 절규가 한숨에 섞여 나오고,

나는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초콜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의사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 보며 말끝을 흐렸다.

“이 아이 눈에는 모두 그림자입니다.”

그때 엄마는 아주 작은 숨소리로 흐느꼈고, 내 입안에서는 초콜릿이 녹아들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흰빛과 검은빛으로 이루어졌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좀 더

많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엄마와 오빠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유치원에 입학하고부터였다.


유치원에서 또래 친구들은 나를 놀렸다. 더듬거리고 넘어지면서 무엇이든 몇 박자씩

늦어지는 내 모습이 친구들에게는 그냥 가벼운 우스갯거리였다. 그때마다 선생님이

어김없이 흑기사가 되어 내 편을 들어주시곤 했다. 말하자면 또래 친구들 눈에는 내가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시력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사소한 일에도 늘 선생님을 찾았다. 유치원에서는 선생님이 곁에 있어야 했고,

집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나를 지켜 주어야만 했다. 아무튼 나는 누구로부터 관찰

대상이었다.


그날도 아침 밥상에 오랜만에 미역국이 올라왔다. 사실 미역국의 주인공은 나였다.

미역국이 올라온 밥상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내가 아이 같지 않다고 놀렸다.

그러나 내가 미역국을 반기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족이 나란히 함께 하는

밥상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사실 우리 세 가족이 나란히 그림자를 맞대고 밥상에

앉아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찍 출근하시는 엄마, 학교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분주하게 오가는 오빠가 한자리에 모여서 숟가락을 들고 있는 시간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으니까. 우리 가족은 누군가의 생일날이 되어야 비로소 밥상을 마주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집안에 미역국 냄새가 흐르면 그림자뿐인 집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사실 나는 미역국의 독특한 비린 냄새가 너무 싫었다.


“진희 생일 케이크, 생크림 듬뿍 바른 걸로 사 올까?”

엄마가 밥그릇을 가까이 고쳐 당겨주며 내게 물었다.

“엄마는? 얘는 초코케이크 좋아하잖아.”

오빠가 자기 미역국을 내 국그릇에 가득 덜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가 곧 말을

이었다.

“나, 학교 그만둘래!”

하필 내 생일날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선전포고였다. 밥상에서 부드럽게 어른거리던

엄마 그림자가 우뚝 멈추고, 곧 숟가락 소리도 끊어졌다. 순식간에 밥상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리 집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멈추면 감정이 끊어지는 것이고 어김없이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오빠는 오래전부터 대학을 포기하고 카레이서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대학을 마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오빠를 극구 말리는 참이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잠자코 멈춰 있던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급기야 엄마가 소리쳤다.

“학교나 졸업하고 해!”

그때 오빠 그림자가 앉은 채 대꾸했다.

“앙드레김 아저씨도 대학교 안 나왔데.”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오빠가 먼저 하고 말았다. 나도 마음속으로 대학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가 싫은 건 더욱

아니었다. 나 때문에 많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학교에 다니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나를 도와야 하고, 내 몫의

일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상상만 해도 싫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도 청소 당번이며 급식당번은 모두 친구들의 몫이 되었다. 내 일을 떠맡은 친구들이

청소하고 급식당번을 할 때 한쪽에서 그 일을 마칠 때 가지 서 있어야 하는 내가 죽을

만큼 싫었다. 나 때문에 미안하기도 하고, 그 이상한 죄책감이 마음속에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몸도 마음도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늘 누군가의 배려와 도움으로 살아가는 불편한 사람이라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한 자책감은 내 안에 호랑가시나무처럼 무럭무럭 뿌리 내리며 내 생각과 의지를

마구 쑤시고 할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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